조던 필 감독의 영화 '어스(Us)'는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 현대 사회의 이면을 파헤치는 상징적 작품이다. 가족을 위협하는 이중 인물,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는 정체성, 계층, 심리적 분열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영화 '어스'가 보여주는 인물 구조와 상징을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집단적 불안과 사회적 위협을 해석해본다.
인물 구조 속 '또 다른 나'의 공포
영화 ‘어스’의 공포는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주인공 애들레이드(루피타 뇽 분)는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고, 거울 미로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녀를 마주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미스터리로 시작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내면의 그림자’와 마주하는 철학적 공포로 확장된다. 영화의 주요 반전인 ‘진짜 애들레이드와 복제된 레드의 뒤바뀜’은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중 인물 구조는 프로이트의 ‘이드(id)’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억압하고 외면했던 욕망과 트라우마가 복제된 존재를 통해 되살아나며, 스스로를 위협하는 구조를 만든다. 영화 속 레드는 단순히 공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억압된 계층과 정체성이자 우리가 감추고 살았던 또 다른 자신이다. 이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만든다.
애들레이드와 레드의 관계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둘 다 피해자이며, 둘 다 진실을 알고 있는 존재다. 이 모호한 이중성은 현대인이 갖는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내면의 불안정함을 상징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는 단순히 스릴을 넘어서, 인간 심리의 깊은 층을 건드리는 설계다.
분열된 사회의 은유, 복제인간과 지하세계
‘어스’가 전달하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바로 사회적 계층과 구조적 분열이다. 영화 속 복제인간들은 미국 전역의 지하 터널에 숨어 살아왔으며, 이들은 지상에 사는 인간들의 그림자 같은 존재다. 언어도, 감정 표현도 서툰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억눌린 분노를 축적해왔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지상으로 올라와, 본래의 인간들과 자리를 맞바꾸기 위해 공격한다.
이는 명백한 사회적 은유다. 복제인간은 낮은 계층, 소외된 집단, 혹은 우리 사회가 무시하거나 배제해온 수많은 존재를 상징한다. 조던 필은 이들을 통해 "당신이 누리는 삶의 뒤편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냉정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안락함을 누리는 동안,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는 동일한 고통이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세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구조적 시스템을 의미한다. 무시되어온 진실, 침묵당한 목소리, 감춰진 폭력들이 이곳에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 이들이 지상으로 올라오며 인간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손에 손을 잡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이는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상징 장치로 드러나는 현대인의 불안
‘어스’는 철저히 기획된 상징의 영화다. 가위, 거울, 토끼, 붉은 옷 등 모든 장치는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불안과 현대 사회의 구조를 상징한다. 특히 가위는 ‘하나에서 둘을 나누는 도구’로, 이중성과 분리를 표현하며, 동시에 복제된 존재가 본래를 제거하는 상징적 무기로 사용된다. 이는 경쟁, 분열, 자기 파괴를 의미한다.
거울은 자아를 확인하고 뒤틀린 나를 마주하는 공포를 상징하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로 반복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갖는 자기인식의 왜곡, 그리고 집단적 자아정체성의 위기를 반영한다.
또한, 토끼는 생명력과 실험의 대상을 동시에 의미한다. 복제인간들이 먹는 유일한 음식으로 등장하는 토끼는 생명과 희생, 실험체로서의 인간을 상징하며 현대인의 존재 불안을 집약한다.
마지막으로 붉은 옷과 손에 손잡기 퍼포먼스는 1986년 실제 미국에서 진행된 “Hands Across America” 캠페인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표면적으로는 연대와 희망을 상징하지만, 영화에서는 공허한 메시지의 반복과 형식적 연대의 허망함을 비판적으로 그린다. 이 장면은 우리가 집단적으로 반복하는 ‘위로 없는 퍼포먼스’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다.
‘어스’는 단순히 무섭고 기묘한 공포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 계층의 분열, 억압된 내면을 복제된 존재를 통해 비판적으로 풀어낸 철학적 영화다. “그들은 우리다(They are us)”라는 메시지는 불편하지만 명확하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결국,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용기이자,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과 직면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